설비는 관제하는데 업무는 관제하지 않습니다
제조업에는 관제라는 말이 익숙합니다. 설비 상태를 실시간으로 봅니다. 온도와 진동과 가동률이 화면에 뜨고, 이상이 생기면 알림이 옵니다. 오래전부터 해온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물어보면 답이 잘 안 나옵니다.
"지금 진행 중인 수주 100건 중에 몇 건이 어디서 막혀 있습니까."
각 부서에 물어보면 자기 구간은 답합니다. 설계는 설계 진척을, 구매는 발주 현황을, 생산은 작업 진행을 압니다. 그런데 수주 한 건이 들어와서 출하까지 가는 전체 흐름을 한눈에 보는 화면은 대개 없습니다.
설비는 관제하는데 업무는 관제하지 않습니다.
왜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가
업무가 안 보이는 상태는 새로운 문제가 아닙니다. 오래 그랬고 그럭저럭 굴러왔습니다. 사람이 전화하고 메일 보내고 회의해서 맞췄습니다.
그런데 지금 두 가지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첫째,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 일이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부서마다 Agent를 만들어 쓰고, 만들기 쉬워지면서 도구가 늘어납니다. 그것들이 각자 판단하고 각자 처리합니다. 사람이 매 건을 확인하던 시절에는 흐름이 사람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이제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둘째, 안 보이는 것은 통제할 수 없습니다. 자동화된 것이 잘못 돌아가면 사람이 하던 실수보다 빠르게 번집니다. 그리고 무엇이 왜 그렇게 됐는지 나중에 되짚을 수 없으면 고칠 수도 없습니다.
E2E로 본다는 것
E2E는 끝에서 끝까지라는 뜻입니다. 수주에서 시작해 설계, 구매, 생산, 출하, 정산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보는 것입니다.
지금은 대개 구간별로 봅니다. 각 부서가 자기 시스템에서 자기 지표를 봅니다. 그러면 두 가지가 안 보입니다.
- 구간 사이 — 설계가 끝나고 구매가 시작되기까지 며칠이 걸리는지. 각 부서 안에서는 문제없이 처리됐는데 사이에서 시간이 사라집니다.
- 한 건의 전체 여정 — 이 수주 건이 지금까지 어디서 얼마나 지체됐는지. 부서별 평균 리드타임은 알지만 특정 한 건이 왜 늦는지는 모릅니다.
대개 문제는 구간 안이 아니라 구간 사이에 있습니다. 부서별로는 다 잘하고 있는데 전체 납기는 늦는 상황이 여기서 나옵니다.
무엇이 보여야 하는가
관제 화면을 만든다고 하면 지표를 잔뜩 늘어놓기 쉽습니다. 실제로 필요한 것은 몇 개 되지 않습니다.
- 지금 어디에 있는가 — 진행 건별로 현재 단계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 어디서 멈춰 있는가 — 정해진 시간을 넘겨 정체된 건. 며칠째인지까지.
- 정상에서 벗어난 것 — 설계 변경이 발생한 건, 사양이 바뀐 건, 납기가 밀린 건.
- 자동으로 처리된 것 — 어떤 Agent가 무엇을 근거로 어떤 판단을 했는지의 이력.
- 데이터가 어긋난 곳 — 시스템 간 기준정보가 맞지 않아 연결이 끊긴 건.
마지막 두 개가 새로 추가된 항목입니다. 예전 관제에는 없었습니다. 사람만 일할 때는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순서가 있습니다
관제 화면부터 만들려고 하면 잘 안 됩니다. 앞에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여러 시스템에 걸친 흐름을 하나로 보려면, 각 시스템의 데이터가 같은 것을 같다고 판단할 수 있게 정리되어 있어야 합니다. ERP의 수주번호와 PLM의 프로젝트번호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두 화면을 나란히 놓아도 한 건의 여정은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관제는 기준정보 정리와 중간 계층 위에 올라갑니다. 데이터가 부실한 상태에서 화면을 만들면, 틀린 숫자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화면이 됩니다. 없는 것보다 나쁩니다.
가장 흔한 실패
공들여 만든 대시보드를 아무도 보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것을 여러 번 봤습니다.
이유는 대개 하나입니다. 봐도 할 일이 정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숫자가 빨간색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그것을 본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면 다음부터 안 봅니다. 그래서 화면에는 상태만 있으면 안 되고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3번 건 자재 입고 지연, 구매 담당 확인 필요" 정도로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앞선 글에서 반복해서 나온 원칙이 여기도 적용됩니다. 보는 사람에게 이득이 있어야 봅니다. 보고용으로만 쓰이는 화면은 보고할 때만 열립니다.
관제와 감시는 다릅니다
마지막으로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놓치면 앞의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관제는 흐름을 보는 것입니다.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쉽게 감시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리고 감시로 인식되는 순간, 사람들은 기록을 피합니다. 이 블로그의 첫 글에서 다룬 것이 정확히 그것이었습니다. 변경 기록이 평가에 노출되니까 확정을 미루고, 확정을 미루니까 데이터가 시스템 밖에 남았습니다.
관제 화면이 "누가 늦었는지"를 보여주는 도구가 되면 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데이터는 다시 엑셀로 돌아가고, 화면에는 예쁜 숫자만 남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보지 않을지 정하는 것도 설계입니다. 개인별 처리 시간을 보여줄 수 있어도 안 보여주는 선택, 지연 사유를 사람이 아니라 원인으로 분류하는 선택. 이런 결정이 기술적 설계보다 중요합니다.
정리
설비를 관제하는 이유는 멈추면 손실이 크기 때문입니다. 업무도 멈춥니다. 그런데 업무가 멈춘 것은 잘 안 보입니다. 며칠 뒤에 납기 회의에서야 드러납니다.
AI와 자동화가 늘어나면 이 문제가 커집니다. 사람이 개입하지 않는 구간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관제는 자동화의 부속물이 아니라 자동화를 늘리기 위한 전제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늘릴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여섯 편에 걸쳐 BOM 하나가 늦는 이야기에서 시작해 전체를 관제하는 이야기까지 왔습니다. 관통하는 것은 하나였습니다. 기술보다 업무 설계가 먼저이고, 업무 설계는 사람이 그것을 할 이유가 있을 때만 지켜진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막히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으시면 문의로 남겨주세요. 현장의 구체적인 상황일수록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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