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X 수준은 회사 단위로 매길 수 없습니다
AX를 시작하려는 회사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질문은 대개 이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쯤 와 있나."
이 질문에 답하려고 성숙도 모델을 꺼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레벨 1부터 5까지 나누고, 각 레벨의 특징을 적고, 우리 회사가 몇 단계인지 표시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이 방식은 대개 쓸모가 없습니다. 이유는 모델이 부실해서가 아닙니다. 회사 단위로 레벨을 매기는 것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같은 회사 안에서도 수준이 다릅니다
앞서 쓴 글에서 이런 상황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자재관리는 시스템을 아주 잘 쓰는데, 몇 걸음 떨어진 설계 쪽에서는 BOM이 엑셀로 만들어지고 메일로 넘어옵니다. 같은 회사, 같은 시스템입니다.
이 회사는 몇 단계일까요. 답할 수 없습니다. 자재 입출고는 시스템에 정착된 수준이고, BOM 작성은 엑셀 수준입니다. 사업부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회사 전체에 숫자 하나를 붙이면 이 차이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사라진 그 차이에 정작 중요한 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업무를 쪼갭니다
제가 쓰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회사의 큰 업무 단위에서 시작해 계속 쪼갭니다. 더 쪼갤 수 없을 때까지 내려갑니다.
설비제조업이라면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 수주 — 견적, 사양 확정, 계약, 수주 등록
- 설계 — 기본설계, 상세설계, BOM 작성, 설계 변경관리
- 구매 — 소요량 산출, 발주, 납기 관리, 수입검사
- 생산 — 생산계획, 작업지시, 실적 집계, 조립·시운전
- 품질 — 검사 기준 관리, 부적합 처리, 원인 분석
- 원가 — 견적원가, 실적원가, 차이 분석
여기서 더 내려갑니다. "BOM 작성"도 한 덩어리가 아닙니다. 표준품 BOM과 신규 설계 BOM은 성격이 다르고 수준도 다릅니다.
업무마다 수준을 판정합니다
쪼갠 업무 하나하나에 대해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봅니다. 순서대로 올라가는 계단입니다.
- 업무가 정의되어 있는가 — 이 일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하는지가 정해져 있는지. 없으면 여기서 시작합니다.
- 수작업 — 사람이 종이나 기억으로 처리합니다.
- 프로세스 정립 — 순서와 기준이 정해져 있습니다. 도구는 아직 없어도 규칙이 있습니다.
- Excel·Office 수준 — 도구를 쓰지만 개인 파일에 있습니다. 담당자가 바뀌면 끊깁니다.
- 기간 시스템 사용 — ERP·MES·PLM 안에서 처리됩니다. 데이터가 공유됩니다.
- 통합 — 다른 업무·시스템과 데이터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앞의 결과가 뒤로 자동으로 넘어갑니다.
- 자동화 — 정해진 규칙에 따라 사람 개입 없이 처리됩니다.
- 지능화 — 규칙으로 정할 수 없는 판단을 AI가 맡습니다.
순서에 의미가 있습니다. 프로세스가 정립되기 전에 시스템을 넣으면 정착하지 않습니다. 시스템으로 일해본 경험이 없는 조직에 "이 버튼을 누르세요"부터 가르치면, 버튼은 배워도 왜 눌러야 하는지를 모릅니다.
그리고 통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동화를 시도하면 부분만 빨라집니다. 앞뒤가 여전히 수작업이면 전체 리드타임은 그대로입니다.
이렇게 하면 지도가 나옵니다
업무 목록에 각각의 수준이 표시되면 회사의 상태가 지도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그 지도는 대개 얼룩덜룩합니다. 정상입니다. 어느 회사도 균일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세 가지가 드러납니다.
첫째, 병목이 보입니다. 뒤 공정은 통합 수준인데 앞 공정이 엑셀 수준이면, 전체는 엑셀 수준으로 묶입니다. 구매와 생산이 시스템에서 잘 돌아가도 BOM이 엑셀에서 오면 그 앞에서 멈춥니다. 가장 낮은 단계가 전체 속도를 정합니다.
그래서 투자는 가장 낮은 곳에 먼저 들어가야 합니다. 이미 잘 되는 곳을 더 올리는 것보다 효과가 큽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반대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 되는 조직이 목소리가 크고 성과도 잘 보이니까요.
둘째, AI를 붙일 자리가 보입니다. 지능화는 마지막 계단입니다. 앞 단계가 없는 업무에 AI를 붙이면 재료가 없어서 작동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이미 통합된 업무에는 지금 붙일 수 있습니다.
셋째, 판정이 안 되는 업무가 나옵니다. 조직마다 답이 다르거나 아무도 확실히 모르는 업무입니다. 이것 자체가 중요한 진단 결과입니다. 그 업무는 주인이 없다는 뜻이니까요.
흔한 오해 두 가지
전부 지능화까지 올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업무마다 적정 수준이 다릅니다. 회의록 정리는 지능화가 어울리지만, 설비 안전과 직결된 판단은 자동화 이전 단계에 머무는 것이 맞을 수 있습니다. 목표는 모든 칸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병목을 없애는 것입니다.
계단을 건너뛰기는 어렵습니다. 엑셀 수준에서 자동화로 바로 갈 수는 없습니다. 다만 예외가 하나 있습니다. 흩어진 문서와 도면과 메일을 찾을 수 있게 만드는 일은 앞 단계와 거의 무관하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정리가 안 된 회사일수록 효과가 큽니다.
가장 어려운 부분
실제로 해보면 어려운 것은 판정이 아닙니다. 업무를 쪼개는 일입니다.
전체 업무 목록을 온전히 가지고 있는 회사가 드뭅니다. 조직도는 있지만 업무 목록은 없습니다. 부서별로 물어보면 각자 자기 일만 말하고, 그 사이에 끼인 업무는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틈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진단은 표를 채우는 작업이 아니라 업무를 드러내는 작업이 됩니다. 시간이 걸리고, 회의 몇 번으로는 끝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 진단서보다 값집니다.
정리
AX 수준을 알고 싶다면 회사에 등급을 매기는 것부터 그만두는 것이 좋습니다. 대신 업무를 쪼개고, 각각이 어느 계단에 있는지 표시하고, 가장 낮은 칸을 찾으면 됩니다. 그곳이 지금 해야 할 일입니다.
업무를 쪼개다 막히거나 조직 안에서 판정이 갈린다면, 그 상태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으시면 문의로 남겨주세요.
다음 글에서는 프로세스가 정립되지 않은 업무에 시스템을 넣으면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순서를 지킨다는 것이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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